지역생활

얼어붙은 기부문화, 온도 아닌 '용도'가 원인..."어려운 이웃 돕는지 확신못해"

어금니 아빠 12억원, 새희망씨앗 126억원 기부금 횡령 등으로 기부 불신

"기부요? 제 코가 석자에요..요즘 취업도 힘든데 기부할 여력과 의지도 없어요"(서울 거주 대학생 이모(26)씨)

"최근 어금니 아빠나 사회복지단체 기부금 횡령..이런 불미스런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데 제 돈이 어디로 갈지 믿을 수 있나요"(광명 거주 나모(43·여)씨)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전하는 기부문화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서울 번화가에는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라고 외치며 힘차게 종을 흔드는 구세군 봉사자와는 달리 속 빈 자선냄비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모금 참여 독려에 나선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자는 "불경기와 여러 사회적인 이슈로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때문인지 예년보다 조금씩 도움의 손길이 줄어든건 사실"이라며 "적은 금액이더라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금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요즘은 기부문화가 위축돼 안타깝다"고 밝혔다.

실제 통계청의 '2017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지난 2011년 '36.4%'에서 '26.7%'로 10%p 급락했다.

현재 사랑의 열매가 '희망 2018 나눔캠페인(사랑의 온도탑)'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모금액은 지난 29일 기준 2604억 원으로 목표액인 3994억 원의 '65.2%'만을 달성했다. 그동안의 같은 기간 목표 달성률을 비교하면 △2017 '73.3%'(모금액 2630억 원/모금목표 3588억 원) △2016 '78.3%'(2685억 원/3430억 원) △2015 '79.5%'(2598억 원/3268억 원)'으로 예년보다 조금씩 줄어들면서 올해 큰 감소폭을 보였다.

또한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경북 사랑의 온도가 사상 최저치인 37도에 멈춰 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사랑의 온도는 52도인 반면 올해는 총모금액 약 53억 3천만 원(25일 기준)으로 전년보다 약 16억 7천만 원이 줄어든 셈이다.

이처럼 예전과 달리 기부 참여도가 줄어드는 데는 장기적인 경기불황에 따른 요인도 있지만, 사단법인의 기부금 횡령 보도와 특히 최근 화두가 된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기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거부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10월 '어금니 아빠 사건'의 이영학이 거대백악종 치료비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 12억 원을 차량 구매나 문신 비용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8월에는 결손아동 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이 소외계층 후원 명목으로 기부받은 128억 원 중 2억 원가량만 실제 불우아동을 돕는 데 쓰고 나머지는 호화 관광, 고가 수입차, 아파트 구매 등으로 횡령한 사실이 확인돼 공분을 샀다. 또한 대학생들이 불우이웃을 돕자며 모은 성금을 모두 자신들의 유흥비로 사용한 일이 밝혀져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 964명 중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52.3%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답했으며, 이어 '기부를 요청하는 시설,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23.8%)'를 꼽았다.

윤지현씨(27·여)는 "예전에는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후원했지만 후원단체의 과도한 경비 지출 등 운영의 불투명성을 알게 돼 중단했다"며 "또 어금니 아빠 사건처럼 후원금을 유흥이나 사치에 남용한 사례도 이슈가 되면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기부에 거부감이 생겼다. 부유층의 국정농단이나 재벌비리 같은 사건도 기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박임택씨(26)는 "적은 돈이나마 보태서 돕고 싶지만 취업준비와 학자금 마련 때문에 여유가 없다"며 "1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 생각인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알바생을 줄이는 추세고, 대학생은 방학 기간 구직자가 많아 몇 주째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다. 누구를 돕는다는 일이 사치인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최근 새희망씨앗, 이영학 사건 등의 여파로 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멀어져 우려된다"며 "공동모금회는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형성된 기부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개선을 위해 행정부·입법부 감사와 모금 내역, 경영정보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앞으로도 청렴한 기부문화 조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NS 공유하기 페이스북트위터
목록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