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취업절벽..대학 졸업식도 달라진다

졸업유예, 기약없는 열공모드, 눈높이 낮추는 취준생..깊어진 시름

극심한 취업난으로 올해 2월 전국의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와 꽃다발 수가 확연히 줄고 있는 신(新)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다. 평생 한 번인 졸업식마저도 취업한 학생만 참석하는 전유물이 되는 모양새다.

실제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졸업예정자 대학생 6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졸업식에 '참여하겠다'는 학생이 49.9%로 가장 높았지만, '가지 않겠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가 각각 32.7%, 17.9%를 차지하면서 부정적인 응답이 50.6%로 과반수가 넘었다.
경기권 소재 G대학 졸업식 전경
경기권 소재 G대학 졸업식 전경
◆한산한 졸업식, 졸업유예와 기약없는 열공모드로 피신하는 청년들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9.8%, 실업자 수 43만 5000여 명. 역대 최고 기록이며, 대학 졸업유예자와 각종 시험준비생를 합치면 취업준비생은 8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청년층의 취업 관문이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다.

오는 2월 졸업하는 서울권 K대학 이모(27)씨는 휴학 2년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빠른 포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복학 이후에도 녹록지 않은 취업관문은 한 숨만 나온다. 결국 약학대학 입시(PEET)를 준비한 그는 이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고 다시 노량진 학원가로 돌아갔다.

김모(23·여)씨는 서울권 D대학을 자퇴하고 지방대학 보건계열 학과로 재입학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학과특성상 조선업 불황으로 취업이 안 되는 선배들을 보며 2년 간의 대학생활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졸업하면 취업률이 높은 간호사를 목표로 보건계열 대학 재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 고시촌 점심 시간 컵밥 먹는 고시생들
노량진 고시촌 점심 시간 컵밥 먹는 고시생들
올해 충청지역 소재 K대학 재학 중인 문모(25)씨는 졸업유예를 결정, 오는 2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영어공부와 경험을 쌓겠다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 치열한 취업경쟁을 잠시 벗어나고 싶은 '현실 도피'와 다름 없다. 취업이 안 된 상황에서 졸업 후 공백기는 취업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까 우려하는 마음도 크다.

대상관계 심리치료크리닉 권애경 박사는 "거듭되는 취업 실패로 우울증, 압박감을 느끼는 청년층의 심리상담이 늘어났다"면서 "특히 이들이 개인의 심리치료를 떠나 취업시장에서 실력보다 재력과 돈 등 빈부격차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상대적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포기'를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취업절벽 속 열악한 근로환경은 배부른 소리일 뿐..눈높이 낮춰 취업

지난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 시간은 2천 시간 이상으로 세계에서 3위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근로 시간이 오히려 더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월평균 근로시간은 1년 전보다 5.6시간이나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 중 최장 근로시간과 과열경쟁을 조장하는 기업풍토로 피로도가 높다. 그러나 올해 졸업하는 취준생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집에서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면 취업분야를 정해 공부를 하겠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는 많은 졸업생은 눈높이 낮춰 취업에 나선다.

서울권 H대학 김모(27)씨는 이번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고 취업준비 스터디카페에 있는 답답함이 '직장' 그곳이 지옥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부추긴다. 그는 "올해 상반기까지 공기업, 대기업, 중견기업에 도전해보고 안 되면 눈높이를 낮춰 중소·벤처기업에 지원할 생각이다"면서 "근무환경이 열악해도 우선 취업해서 직장경력이라도 쌓는 것이 내 이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취업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취업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거듭되는 취업실패와 공정하지 못한 사회구조까지 체감하며 청년들의 좌절감이 짙어진다. 원천적인 불평등을 의미하는 '흙수저론'를 수긍하면서 눈높이 낮춘 취업을 선택한다.

지난해 구직활동 경험자 10명 중 8명은 연봉 및 채용조건 등의 눈높이를 기대보다 낮춰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한 취업포털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구직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자 1058명을 대상으로 '취업 눈높이를 낮춰 지원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 76%가 '있다'라고 답했다.

연봉, 기업형태, 위치 등을 하향한다는 의미인데, 그러나 취업이후 기업환경에 대한 불만감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희망하는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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