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생활

데이트 폭력 피해자 46.4% 결혼에 골인..'폭력에 둔감'

"결혼하면 안 그러지 않을까요..."

직장인 김모(30) 씨는 3년 가량 만난 남자친구와 올해 상반기에 결혼한다. 그러나 불현듯 드는 불안함에 잠을 설치곤 한다. 그 이유는 남자친구의 폭력성때문.

김 씨는 "평소에는 자상하던 남자친구가 다투거나 술을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폭언과 손찌검까지 한다"며 "싸운 뒤 늘 사과하며 반성하는 모습과 변할 것이란 기대감에 만남을 이어갔다. 이전보다 나아졌지만 언제 돌변할 지 몰라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서울거주 여성 10명 중 9명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고, 그중 상당수는 데이트 폭력 전적이 있는 애인과 결혼까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서울거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1770명(88.5%)이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데이트 폭력 피해자 46.4%는 상대방과 결혼했고 이 가운데 17.4%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다'고 응답했다. 기혼 조사참여자 833명 중 742명은 데이트 폭력 경험이 있었고, 그중 46.4%가 가해 상대방과 결혼했다.

폭력 유형 중 신체적 폭력은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잡음'이 35%로 가장 많았다. '심하게 때리거나 목을 조름'(14.3%), '상대 폭행에 인한 병원치료'(13.9%), '칼(가위) 등의 흉기로 상해'(11.6%)와 같이 폭력 정도가 심한 경우도 10%를 넘었다.
본 기사와 무관한 설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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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학생부터 사회초년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이 데이트 폭력 문제에 노출됐지만 상당수가 피해사실을 쉬쉬하는 경향이 높았다. 데이트폭력 유형별 본인이 취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분당에 사는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전 남자친구의 잦은 폭력과 심한 폭언 탓에 우울증에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2년 전 남친이 갑자기 핸드폰을 확인해 대학 남자동창과 카톡한 것을 보더니 상황 설명을 듣지도 않고 화를 내고 핸드폰을 던졌다. 심지어 칼로 가방을 찢고 욕을 했다"며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충격적이었지만 갈수록 남친의 폭력성에 무뎌졌다. 지인에게 말도 못하고 몇 해째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회초년생 임모(29·여)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의 전 남자친구는 매일 술을 마셨다. 꼭 만취할 때까지 마셔야했고, 취한 순간 돌변해 물건을 던지고 폭언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 술만 취하면 나오는 그의 본성(?)을 알게 됐다"며 "다음 날 술이 깨면 기억조차 못하고 2년째 사과만 반복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당시에는 알콜 중독이나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상관계 심리치료크리닉 권애경 박사는 "국내 아직까지 남아있는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우월주의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굴욕과 수치심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소극적이다"며 "처음 피해 여성들이 받는 충격은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 폭력에 둔감해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연애시절의 데이트 폭력이 결혼 후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폭력성은 자아가 형성되는 유아기때 가정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2차 피해 사례가 우려된다"며 "피해 여성들은 심리치료, 성폭력 상담 등을 활용할 것을 당부하며, 정부 차원에서도 데이트 폭력 예방교육과 피해지원 마련 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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