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고학력 vs 저학력 취준생들, 블라인드 채용 희비 엇갈

"한국사 왜 땄나..스펙 종이조각 될 예정이네요.."

경기권 D대학을 졸업한 김모(27)씨는 지난 1년간 공기업, 사기업 취업을 목표로 대외 활동, 영어 점수, 자격증 따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하반기 공채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다는 소식에 그동안 쌓아온 스펙이 무용지물될 판이다.

김 씨는 "학벌에서 모자란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우려고 방학 기간 재수강을 해가며 학점을 올리고 한국사 1급, 토익, 토익스피킹, 교육 자격증 등 열심히 준비했다"며 "그런데 올해부터 갑자기 직무 관련 능력 위주로만 블라인드 채용이 이뤄진다 하니 그간 준비한 노력과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또 그에 맞춰 다른 식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공기업(공공기관 332개, 지방공기업 149개)이 입사지원서에 얼굴 사진을 빼고 출신지역·신체조건·가족관계·학력·학점 등을 적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 면접 때도 지원자의 인적 정보를 제공받지 않은 상태에서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한다.

이는 앞서 문재인 정부가 "이력서에 학벌,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을 기재하지 않도록 추진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와 공동으로 마련한 공공 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같은 채용 변화 바람에 LH공사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2017년도 체험형 청년인턴 모집을 진행하고, 코레일도 직무와 무관한 서류평가를 없애 인재를 선발한다고 19일 밝혔다.

하지만 해당 제도의 주인공인 취업준비생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취준생들 사이 편견 없는 공정한 채용이 이뤄질 거란 기대감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채용 제도에 맞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부담만 가중된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또한 명문대와 고졸, 지방대, 전문대 등 비명문대 출신 간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대구 경북에 소재한 D대학 4학년 이모(26)씨는 "지방대 같은 경우 면접볼 기회도 없이 서류에서 탈락하는 게 대다수인데 이번에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 대학 이름이나 출신 등 학벌로 인한 서류광탈은 좀 줄 거 같다"면서 "지원서가 주는 선입견을 없애고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돼 긍정적으로 보며 모든 기업에 확대 시행됐음 한다"고 말했다.

서울 S대를 졸업한 최모(28)씨는 "고등학생 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다. 학력도 스펙도 노력의 성과물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명문대생 등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며 "블라인드 채용이 학력 차별 없이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공정 채용이라고 하는데, 피땀 흘려 명문대 들어간 사람과 비명문대 들어간 사람을 왜 똑같은 출발선에 세우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서울권에 위치한 K대 재학생 김모(26·여)씨는 "학교와 학점 등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조건을 만든 사람 입장에선 그걸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고, 반대로 학교나 학점이 낮은 애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기에 공평하기보다는 각자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럴거면 좋은 학교갈 필요도 없고, 좋은 학교가서 더 똑똑한 애들이랑 경쟁하는데 시간을 쏟을 바에는 취업을 위한 공부만 준비하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가 공식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면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이 채용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제 채용 현장에서 제도 취지에 맞춰 제대로 실행될지 그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취업준비생 변모(29)씨는 "실제 모 기업은 블라인드라 해놓고 막상 보면 임원 면접이나 인성 면접때 간부들이 요청해 학교 성적 관련 된 서류를 요청하거나 면접관들이 이미 다 알고 물어본다는 후문이 있다"며 "그럼 서류가 붙더라도 면접 때 학교나 학점 갖고 짜들텐데 의미 없다고 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만큼 변별력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인사담당자 7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사담당자 5명 중 4명은 채용 시 지원자의 학력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3.4%는 '인재 채용 시 지원자의 학력사항을 확인한다'고 답했고, 16.6%는 '확인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학력 중에서도 최종학력(75.4%), 전공분야(72%), 출신학교(42.9%), 학점(37%) 등을 눈여겨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을 확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원자의 최종학력이 실제 업무 능력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58.7%가 '학력이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9.5%는 '매우 영향이 크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지역인재 30% 할당제도' 역시 논란이 많다. 지역할당제란 공공기관이 신입 직원을 공채할 때 해당 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를 우대하는 제도다.

창원에 사는 김모(27) 학생은 "공기업의 경우 학연 지연을 없앤단 이유로 학벌 입력란이 없지만, 지역살리기 일환으로 강제로 30%정도의 인원을 해당 공사 주변의 인재로 채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대학을 나왔는지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학업, 학력을 보지 않겠다는 NCS 도입 취지가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지역대학 가점으로 불평등 경쟁이 생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학벌은 가리지만, 지방대는 가리지 말라. '학벌 블라인드'와 '지방인재 할당제' 양립할 수 없는 두 제도는 현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포퓰리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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